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태 타이거즈 버스 방화 사건 (문단 편집) === 잔여경기 진행 === 이 사건은 한국시리즈 경기를 취재하러 나왔던 취재진들에 의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폭동이나 일으키며 민폐 끼치는 야구팬은 필요가 없다고 강력하게 비난했으며 해태 측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기를 속행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사건 당일 밤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이용일]] [[KBO/역대 사무총장|KBO 사무총장]]은 이 사건을 프로야구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여겼다고 회상했다. 관중들이 극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4차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고 그래서 처음에는 서울에서 중립경기로 4차전을 치르는 방안이 유력하게 대두되었지만 이용일 사무총장은 4차전을 서울에서 치른다면 앞으로 대구에서는 영영 야구 경기가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며 강력 반대했고 결국 경찰에 지원을 요청하여 대구에서 4차전을 치르기로 했다. 다음 날인 10월 23일 아침 대구에서 4차전이 불가하다는 외부 압력이 KBO로 쏟아졌다. 그러나 아침에 이용일 사무총장으로부터 보고받은 [[서종철]] KBO 총재는 프로야구의 역사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만약 4차전이 대구에서 열리지 못했다면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영호남 지역갈등]]이 더욱 극심했던 [[1987년 한국시리즈|이듬해 한국시리즈]]는 전 경기를 중립경기로 치렀을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구 4차전을 강행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곧이어 서 총장은 대구시에 연락해 오전 중에 대구시 및 대구 경찰 당국과의 연석회의를 가졌고 11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예정대로 경기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4차전은 500여 명의 전경 병력이 동원되어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러졌다. 관중들은 경찰관들의 철저한 소지품 검색을 받고 입장했으며 관중석 곳곳에 사복 경찰관들이 배치되었다. 4차전은 4회까지 0:0의 투수전으로 가다가 5회 해태가 1득점을 선취하고 앞서나갔으나 6회 삼성이 역전에 성공했지만 9회초 해태가 동점에 성공하면서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해태가 7:4로 승리를 거뒀다. 4차전 후에도 분노에 찬 3천여 명의 관중들이 500여 명의 전경 병력에도 불구하고 선수단에게 오물을 투척하고 "오늘 경기를 취소하라"고 외치며 난동을 부렸으며 1차전에서 나온 해태 팬의 '빈병 투척 사건'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경기가 종료된 지 30여분이 지나자 결국 경찰관들은 최루탄을 쏘며 강제 해산에 나섰다. 그러나 최루탄 발사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1시간 가량 난동을 지속했다. 양 팀 선수단은 덕아웃에서 추위에 떨며 대기하다가 밤 11시 반에야 구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관중들은 [[태평로(대구)|태평로]]로 이동하여 돌과 병을 던지며 경찰이 최루탄을 쏜 것에 대해 항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